교회에 ‘기념비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규모만 보면 거대한 대성당이 앞서지만, 금빛 장식의 밀도로 따지면 작은 예배당이 거대한 본당을 압도할 수 있다. 역사적 무게를 기준으로 삼으면 소박한 건물도 상징성 하나로 순위가 달라진다. 이 글은 독자가 흔히 떠올리는 ‘규모’를 우선 기준으로 삼고, 예술적 풍요와 역사적 중요성을 함께 고려했다.
지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한 나라씩 고르지도 않았다. 남미의 기념비적인 식민지 종교 건축은 실제로 키토, 쿠스코, 리마, 포토시를 잇는 안데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대서양 연안의 살바도르가 유일하면서도 화려한 예외다. 여행 안내서에서 오류가 정정보다 빨리 퍼지는 현실을 감안해, 각 항목에서는 문서로 확인되는 사실과 반복되어 온 이야기를 구분한다.
1. Iglesia de la Compañía de Jesús — 키토, 에콰도르
예수회가 1605년에 공사를 시작해 약 160년에 걸쳐 완성한 라 콤파니아는 아메리카 바로크의 정점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다. 정면은 안데스의 화산암을 조각해 만들었고, 내부에는 길이 약 58미터의 본당이 26미터 높이의 천장까지 이어진다. 표면 대부분은 키토 화파 예술가들이 작업한 금박으로 덮여 있다.
신화 확인. 여행 블로그와 부동산 사이트에는 내부에 7톤의 금이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금박은 1마이크론보다 훨씬 얇게 두드려 만드는 재료이므로 7톤이라는 수치는 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신중한 추정치는 23캐럿 금박 약 50~60킬로그램이다. 여전히 놀라운 양이지만 전설보다 약 100배 적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지옥’과 ‘최후의 심판’ 그림도 1620년 에르난도 데 라 크루스의 원작이 아니라 19세기 알레한드로 살라스가 그린 복제본이다.
교회는 1987년 지진과 1996년 복원 중 발생한 화재를 견뎠고 2005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키토 역사 지구의 핵심 건축물이다.

2. Iglesi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 키토, 에콰도르
라 콤파니아가 화려함으로 승부한다면 산 프란시스코는 규모로 압도한다. 스페인이 1534년 키토를 세운 뒤 20년도 지나지 않아 공사가 시작됐고 16세기 후반까지 확장됐다.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아트리움, 쌍둥이 탑, 회랑, 광장, 예배당이 어우러진 키토 최대의 식민지 건축 단지다.
내부에는 무데하르 양식의 격자 천장과 금빛 바로크 제단이 공존한다. 이곳은 북부 안데스의 교회들에 작품을 공급한 키토 화파의 요람으로 평가된다. 옆의 칸투냐 예배당은 건축가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전설로 유명하지만, 이는 문서화된 역사라기보다 식민지 시대 민간전승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3. Catedral del Cusco — 쿠스코, 페루
대성당은 잉카 비라코차의 궁전으로 전해지는 키스와르칸차 위에 세워졌다. 면적은 약 3,920제곱미터이며, 사크사이우아만 요새에서 가져온 붉은 화강암도 건축에 사용됐다. 첫 미사는 1654년에 열렸고 1668년에 축성됐으며, 1928년 소(小)바실리카로 인정받았다.
건축은 안데스 특유의 혼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딕식 리브 볼트 아래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질서가 겹친다. 내부에는 삼나무 성가대석, 조각 설교단, 숭배받는 세뇨르 데 로스 템블로레스, 쿠스코 화파의 회화가 있다. 특히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서는 식탁 위 구운 고기가 안데스의 기니피그인 쿠이로 묘사된다. 기독교가 이 지역에서 어떻게 현지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시각적 번역이다.

4. Iglesia de la Compañía de Jesús — 쿠스코, 페루
아르마스 광장에서 대성당과 마주 보는 예수회 교회는 잉카 우아이나 카팍의 옛 궁전 아마루칸차 위에 서 있다. 1653년 푸쿠라 채석장을 받은 뒤 야심찬 설계가 추진되자 식민지 페루에서 가장 잘 기록된 건축 분쟁 가운데 하나가 벌어졌다. 1656년 대성당 참사회는 디에고 아리아스 데 라 세르다를 통해, 몇 미터 떨어진 모교회를 압도할 만큼 대담한 정면이라며 항의했다. 총독은 예수회의 손을 들어줬고 페드로 데 오르테가 소토마요르 주교는 레알 아우디엔시아에 항소했지만, 교회는 결국 1668년 7월 24일 완공됐다.
신화 확인. 교황이 예수회에 대성당보다 높게 짓지 말라고 금지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후대의 각색이다. 분쟁은 식민지 법정에서 다뤄졌으며, 로마의 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훨씬 전에 건물이 완성됐다. 오늘날 남은 것은 남미에서 가장 뛰어난 석조 조각 정면 가운데 하나다.

5. 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 리마, 페루
프란치스코회는 리마가 건설된 1535년에 이 부지를 받았지만, 오늘날 보이는 절제된 황토색 교회는 반복된 지진 뒤 17세기 후반에 대부분 다시 지어졌다. 리마 바로크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세비야산 타일, 무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격자 천장, 거대한 도서관 덕분에 수도원 전체가 식민지 미술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공간은 지하에 있다. 카타콤은 19세기 초까지 식민지 공동묘지로 사용됐다. 많은 안내서가 빠뜨리는 두 가지가 있다. 흔히 언급되는 2만5천 구의 매장은 문서화된 전수조사가 아니라 반복되어 온 추정치이며, 두개골과 대퇴골을 기하학적으로 배열한 모습도 원래의 장례 방식이 아니라 후대의 박물관 전시다. 이 단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리마 역사 지구에 포함된다.

6. San Lorenzo de Carangas — 포토시, 볼리비아
건물 자체는 소박하다. 1548년 교구 교회로 시작한 단일 어도비 본당이며, 폭설로 지붕이 무너진 뒤 다시 지어졌다. 그럼에도 산 로렌소가 이 목록에 오른 이유는 하나다. 남부 안데스 메스티소 바로크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석조 정문이다.
신화 확인. 유명한 정면을 16세기 작품으로 적는 자료가 많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 문은 1728년부터 1744년 사이에 조각됐다. 도상은 두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자신 있게 결합한다. 나선형 기둥은 치마 모양의 팔데인스를 입은 원주민 형상으로 이어지고, 차랑고를 연주하는 세이렌, 비우엘라와 하프를 든 천사, 포도덩굴 사이의 해와 달이 함께 등장한다. 내부에는 가스파르 데 라 쿠에바의 그리스도 조각도 있다. 한때 런던과 파리에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던 포토시 은광의 부가 남긴 예술적 결실이다.

7. Igreja e Convento de São Francisco — 살바도르, 브라질
대서양의 예외다. 수도원은 1686년, 교회 공사는 1708년에 시작됐으며 약 1723년에 문을 열고 1750년 무렵 장식을 마쳤다. 내부는 금빛 조각 목공인 탈랴 도우라다로 가득 찬 ‘호러 바쿠이’다. 삼나무와 자카란다 조각에 금을 입히고, 푸른색과 흰색의 포르투갈 아줄레주 패널을 끼워 넣었으며, 천사와 새가 거의 모든 면을 채운다. 포르투갈 기원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살바도르 역사 지구의 일부다.
신화 확인과 현재 상황. 1톤 또는 800킬로그램의 금이라는 수치는 순금 덩어리가 아니라 목재 위에 금박과 금가루를 입힌 장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오늘의 여행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2025년 2월 5일 본당 천장 일부가 붕괴해 26세 방문객 한 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교회는 그 뒤 계속 폐쇄 중이다. 긴급 안정화 작업에 이어 브라질 Novo PAC의 지원을 받는 전면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며, 완전 재개장은 약 2029년까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아메리카에서 가장 황금빛인 이 교회를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지도, 그리고 몇 곳의 추가 후보
일곱 곳 가운데 여섯 곳은 옛 은광과 부왕령의 중심이었던 안데스에 모여 있다. 살바도르만이 그 패턴을 화려하게 깨뜨린다. 목록을 더 늘린다면 1784년 원주민 상징으로 장식된 정면을 지닌 라파스의 San Francisco, 뒤집힌 배의 선체 같은 지붕을 가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예수회 지구의 교회, 그리고 알레이자지뉴와 메스트리 아타이데가 브라질 바로크를 가장 개성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오루프레투의 작은 걸작 São Francisco de Assis가 뒤를 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