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14일 일요일, 리처드 D. 헤이저 소령은 U-2 정찰기를 타고 쿠바 서부 상공을 날았다. 미국 국무부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섬 위를 비행한 6분 동안 사진 928장을 촬영했다. 그중에는 워싱턴이 찾고 있던 증거가 있었다.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시설이었다. 케네디는 그 일요일에 소식을 받지 않았다. 카메라에서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가는 사이에 결정적인 작업이 남아 있었다. 사진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감시받는 섬

이 임무에는 앞선 배경이 있었다. 피그스만 침공이 실패한 뒤 워싱턴이 쿠바 정부에 대한 추가 행동을 계획하던 가운데, 니키타 흐루쇼프와 피델 카스트로는 1962년 7월 또 다른 침공을 억제하기 위해 섬에 소련 핵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국무부 역사국은 이러한 맥락을 기록한다. 미국의 감시는 인력과 무기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지만, 배치를 의심하는 것과 시설이 어디 있는지 입증하는 것은 달랐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따르면, 10월 7일이 포함된 주에는 악천후로 정찰 비행이 중단됐다. 14일 일요일에는 하늘이 맑아 다시 촬영할 수 있었다. 이 기관이 보존한 자료는 산크리스토발 1번 기지를 보여준다. 항공 사진이 이후 정책 결정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료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의 가치는 장관을 이루는 풍경이 아니라, 누군가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군사적 세부 사항에 있었다.

사진을 증거로 읽어내다

쿠바 산크리스토발, 1962년 10월 14일. 미사일 관련 장비를 표시한 U-2 사진. 미국 국방부 / JFK 도서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쿠바 산크리스토발, 1962년 10월 14일. 미사일 관련 장비를 표시한 U-2 사진. 미국 국방부 / JFK 도서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출처

미국의 사진 판독 센터 전문가들은 다음 날 영상을 조사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국가안보문서고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존하고 있다. 산크리스토발의 로스팔라시오스 부근에서 트럭 행렬을 찍은 사진은 10월 15일 소련 중거리 미사일의 증거로 처음 식별됐다. 다른 사진에는 인근 기지가 나타났다. 자료에는 소련 미사일의 참고 사진도 있다. 식별하려면 확대뿐 아니라 비교가 필요했다.

사진에 인쇄된 날짜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같은 문서고는 이 사진 중 하나에 10월 15일이 적힌 이유가 그날 분석하고 인쇄했기 때문이며, 실제 촬영일은 14일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24시간의 차이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비행이 있었고, 그다음 해석이 있었다. 사진은 장비와 차량, 배치 방식에 관한 기존 지식과 연결되면서 증거로서 의미를 갖게 됐다.

국무부의 문서 연표에 따르면, 결과는 10월 15일 저녁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에게 전달됐다. 번디는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다음 날 아침까지 미루기로 했다. 그는 나중에 작성한 메모에서 확대 사진과 다른 설명 자료를 더 준비해야 했고,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문서는 그가 직접 기록한 이유를 알려준다. 대화를 지어내거나 기록에 없는 생각을 그에게 부여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사진을 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기록은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간을 10월 16일 오전 8시 45분으로 제시한다. 케네디는 주요 참모들을 오전 11시 45분에 소집했다. 비행 이후 이틀이 지났다. 회의 녹취록에는 질문과 끼어드는 발언,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다. 필연적인 결정을 매끄럽게 설명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 강대국의 반응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대안을 논의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따라갈 수 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미국의 행동이 다른 지역과 동맹국들에 영향을 미칠 위험을 경고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사일이 언제 작동 가능한 상태가 될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하고 군사적 선택지를 검토했다. 또한 광범위한 공격이 많은 쿠바인 희생자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위협을 식별하게 했지만, 어떤 대응이 덜 위험한지, 결정을 내릴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스스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비밀 증거에서 합의로

10월 22일, 케네디는 텔레비전으로 미사일 시설의 존재와 해상 ‘격리’ 조치를 발표했다. 비행에서 8일이 지난 뒤, 위기는 정부와 정보기관 내부에만 머무는 사안이 아니게 됐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미국이 이후 유엔에서 사진 증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데 사용한 이미지가 이제 공개적으로 그의 입장을 뒷받침하게 됐다.

해결은 단지 힘을 과시한 결과가 아니었다. 국무부의 공식 역사는 미국이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실과, 로버트 케네디가 아나톨리 도브리닌 소련 대사와 터키의 미국 주피터 미사일 철수에 관해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기록한다. 10월 28일, 흐루쇼프는 소련 미사일을 해체해 쿠바에서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해상 격리는 11월 20일까지 계속됐고, 주피터 미사일은 1963년 4월 터키에서 철수했다.

64년이 지난 지금도 10월 14일의 비행은 이미지의 힘과 이미지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이 전쟁을 필연적으로 만든 것도, 전쟁을 막는 협상을 한 것도 아니다. 사진은 정부가 행동할 정보를 제공했고, 그 정보는 식별하고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거쳤다. 날짜와 문서, 회의를 되짚어보면 두 지도자의 힘겨루기 이상이 보인다. 증거를 확인하고 정치적 출구를 찾아야 해결할 수 있었던 위기의 모습이다.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쿠바 미사일 항공 사진, 미국 국무부: 비행과 발견 보고, 국가안보문서고: 최초 U-2 사진, 케네디 도서관: 10월 16일 회의, 미국 국무부: 위기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