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긁혀 사라졌지만 그 주위의 장식은 살아남았다. 이 대비가 튀르키예 중부의 고고학 유적 우샤클르 회위크(Uşaklı Höyük)에서 2026년 9월 발표된 발견의 핵심이다. 3,000년이 넘은 돌 도장형 인장에서 누군가는 소유자를 식별하는 부분을 골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피사대학교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지우려는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글자를 복원하는 일과 한 사람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다르다. 확인한 발표문은 그 이름이나 소유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으며, 이름을 없앤 이유도 확정하지 않는다.

누군가 없애려 한 표식

발굴을 담당한 학과는 9월 1일 발견을 알렸고, 대학의 영어 뉴스는 9월 8일 이를 전했다. 인장은 유적의 이른바 원형 구조물 주변에서 나왔다. 명문에는 아나톨리아 상형문자가 쓰였다. 손상된 중앙 영역과 보존된 가장자리 무늬의 차이 때문에 발굴진은 마모가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물건에 새겨진 이름은 유난히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표식이었을까? 연구진은 이름을 없앤 행위가 소유자의 정체성이나 기억, 권위를 부정하려는 뜻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더 자세한 출판을 기다리는 해석이다. 정치적 숙청이나 통치자의 단죄, 특정한 종교 갈등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지역 신문 요즈가트 하키미예트는 9월 8일 발견을 보도하면서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밝혔다. 9월 15일에는 튀르키예 통신사 ANKA가 발굴 결과와 요즈가트 주지사실에 대한 보고를 전했다. 이 기사 역시 유적의 고대 이름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유지했다.

아나톨리아 언덕 아래의 도시

우샤클르 회위크는 요즈가트주 소르군 근처에 있다. 주변 경관은 고고학적 관심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넓은 단구 위로 취락 언덕이 솟아 있고, 남쪽 지평선에는 화강암 산괴 케르케네스 다으가 자리한다. 발굴 프로젝트의 유적 설명은 이곳을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와 고대 앙쿠와로 비정되는 중심지 사이의 경로에 놓는다.

이전 발굴에서도 아래 도시의 큰 신전을 비롯한 거대한 공공 건축물과 후대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번 인장은 중요한 취락에 대한 오랜 연구에 더해진 발견이다. 그 의미는 주변 건물과 문헌, 지층에도 달려 있다. 고고학적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물건은 훨씬 적은 질문에만 답할 수 있다.

성스러운 도시 지팔란다일까?

히타이트 문헌은 지팔란다를 폭풍신 숭배의 중심지이자 왕실의 종교 여행 경유지로 묘사한다. 프로젝트 연구진은 이 여정을 우샤클르 회위크와 인근 산들의 위치에 대조한다. 지리와 거대한 종교 건축물은 이러한 위치 비정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새 발표나 인장 자체가 도시의 이름을 확정하는 공개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히타이트 세계는 수도의 유적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유네스코는 하투샤의 신전과 왕실 거처, 성벽, 야즐르카야의 암벽 성소를 설명한다. 이들은 수도 밖의 종교 중심지가 왜 중요했는지 이해하는 넓은 배경이 된다. 그렇다고 두 고고학 유적을 같은 장소로 볼 수는 없다.

Yazilikaya, Hattusha | Francesco Bandarin
Yazilikaya, Hattusha | Francesco Bandarin

우샤클르에서 중요한 미해결 문제는 신전과 독특한 원형 구조물의 관계다. UCL이 2025년 5월 공개한 야으무르 헤프론의 연구 소개는 두 건축물의 공간적·시간적 연결, 또는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조사하려 한다. 가깝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의식에 쓰였거나 같은 시기의 건축물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의례의 흔적과 후대의 화재

ANKA의 9월 보도에는 재, 동물 뼈, 토기, 그리고 잔을 쥔 손으로 끝나는 팔 모양의 용기가 나온다. 이러한 발견은 원형 구역을 의례 공간으로 해석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배치와 연대를 조사해야 하는 단서이지, 고대 의식의 전체 절차를 알려 주는 기록은 아니다.

다른 구역인 성채 정상에서는 2026년 작업을 통해 화재로 손상된 상당한 규모의 건축물 흔적이 드러났다. 피사 발굴 보고는 이를 히타이트 공공 건물들이 버려진 지 수 세기 뒤인 중기 철기 시대와 잠정적으로 연결한다. 이 제안은 확인이 더 필요하다. 같은 언덕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탄 건물을 히타이트 역사에 자동으로 포함해서는 안 된다.

고고학자들은 세기를 어떻게 구분할까

2021년 발표된 동료 심사 논문은 유적의 연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보여 준다. 바르바라 그민스카노바크와 동료들은 목재 종류 확인, 나이테 분석, 방사성탄소 측정으로 목탄을 조사했다. 이전에 발굴한 건물의 나무 기둥에서는 기원전 1415~1363년이라는 보정 연대 범위가 나왔다. 다른 시료는 후대 거주와 관련됐다. 이 결과는 각각의 맥락을 측정한 것이며, 2026년에 나온 인장의 연대를 측정한 것이 아니다.

논문은 한계도 설명한다. 짧은 나이테 배열과 부족한 기준 연대 자료 때문에 나이테 비교만으로는 안전하게 연대를 결정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그래서 여러 방법을 결합했다. 연대는 시료와 지층 안의 위치를 통해 불확실성과 함께 얻어지며, 물건의 인상적인 외양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지워진 이름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견은 한 사람을 식별하는 표식에 가해진 개입의 구체적 흔적을 제공한다. 주변 연구는 그것이 어디에서, 언제,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일어났는지 묻는다. 더 자세한 출판은 판독과 해석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지금은 살아남은 글자들이 마모가 없애려 했던 듯한 질문을 되돌려 놓았다.

출처: 피사대학교—2026년 발굴 보고, 우샤클르 회위크 고고학 프로젝트, ANKA—요즈가트 현지 보도, UCL—종교 중심지 연구, Gmińska-Nowak 외—연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