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유럽 상인들이 향신료와 귀한 물품을 찾던 아시아로 가는 더 짧은 길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했다. 10월 12일, 원정대는 카리브해의 한 섬에 닿았다.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 제도라고 믿었다. 그가 원했던 아시아 항로를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새로운 연결이 열렸다. 식물과 동물, 사람과 질병이 서로 다른 세계 사이를 오갔고, 그 영향은 모든 대륙의 식탁에까지 미쳤다.

배가 오기 훨씬 전부터

뒤에 대서양을 건넌 식품은 유럽인이 이름을 붙이기만 기다리던 미지의 발견물이 아니었다. 원주민 사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작물을 재배하고 개량해 왔다. 옥수수는 1492년보다 수천 년 앞서 오늘날의 멕시코에서 재배화된 뒤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졌다. 안데스의 공동체는 고산지대에 맞는 감자를 길렀고, 열대 지역에서는 카사바와 콩, 호박, 고추 등을 재배했다. 카카오는 메소아메리카에서 이미 오랜 문화적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토양과 계절, 저장과 조리법에 관한 지식이 정교한 식량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익숙한 이야기는 유럽 배가 씨앗 하나를 가져가는 장면에서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씨앗은 이동의 일부일 뿐이었다. 원주민 농부들이 작물을 생산성 있게 길렀고, 원주민 요리사들은 그것을 다루는 법을 알았다. 이후 유럽 제국과 상인들이 식민지 항구와 확장되는 교역로를 통해 작물을 옮겼다. 이 교류는 대등한 만남이 아니었다. 정복과 전염병, 토지와 생계의 박탈이 뒤따랐고,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플랜테이션 노동을 위해 강제로 끌려갔다.

대서양을 건넌 감자

안데스에서 재배화된 감자는 16세기에 스페인에 도착했다. 유럽의 식탁을 곧바로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낯선 식물로 여겨졌고 재배도 지역에 따라 천천히 퍼졌다. 그러나 세대를 거치며 농민과 정부는 다른 주요 작물이 자라기 힘든 기후에서도 감자가 자랄 수 있다는 점을 알아갔다. 감자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 농민과 도시 노동자의 중요한 식량이 되었고, 뒤이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널리 재배됐다.

감자의 역사는 작물의 도착과 정착이 별개의 일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입맛과 농사 방식, 토지 소유, 기후, 정책이 재배 여부를 좌우했다. 아일랜드에서는 감자가 식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고, 원산지인 안데스에서는 수천 종의 지역 품종이 지금도 농업의 일부다. 오늘날 감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왕실의 단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농민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작물을 길러 온 여러 세대의 선택이 감자를 퍼뜨렸다.

새 터전을 찾은 옥수수와 카사바

옥수수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지나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확산에 도움이 됐다. 바로 먹거나 가축 사료로 쓰고, 가루와 여러 가공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기후와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른 지역들에서도 주식이 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옥수수를 세계의 주요 곡물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사람과 가축의 먹거리이자 산업 원료로 쓰인다고 설명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핵심 작물이던 옥수수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재배된다.

카사바는 더 험난한 경로를 거쳤다. 아메리카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이 뿌리작물은 16세기 포르투갈의 교역망을 통해 아프리카에 전해졌고, 열악한 재배 조건에서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 중요한 작물이 됐다. 그 확산은 대서양 무역과 노예제에 얽혀 있었다. 이를 단순한 음식의 모험으로 묘사하면 역사를 가리게 된다. 오늘날 카사바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열대 지역에서 주식이다. 현지의 지식과 입맛에 따라 가루나 알갱이, 삶은 뿌리 등으로 조리된다.

고추와 토마토, 카카오가 바꾼 맛의 지도

고추는 기존의 음식 전통을 지우지 않고 지역의 맛을 바꾼 작물의 대표 사례일 수 있다. 아메리카의 고추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교역망을 타고 아프리카와 인도, 동아시아로 이동했다. 품종에 관한 연구는 한 가지 경로나 정확한 도착 시점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며 아메리카 원산의 Capsicum 고추는 인도 커리부터 중국과 한국의 요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음식에 들어갔다. 아시아의 기존 향신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미 풍성한 식재료에 새로운 매운맛이 더해졌다.

토마토도 유럽 요리에 천천히 들어왔다. 16세기 유럽에 알려졌지만 낯선 식물에서 이탈리아와 지중해 음식의 핵심 재료가 되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토마토 하나가 파스타를 ‘이탈리아 음식’으로 만든 것은 아니며, 감자도 북유럽의 식사를 모두 똑같게 만들지 않았다. 요리사들은 지역의 조리법과 저장 방식, 시장을 통해 열매를 새롭게 활용했다. 오늘날 오래된 전통처럼 보이는 식재료에도 의외로 짧은 역사가 있다.

카카오는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유럽인이 대서양 너머로 가져가기 훨씬 전부터 음료로 만들었고, 사회적·의례적·정치적 의미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유행하는 음료가 됐고, 나중에는 세계적인 초콜릿 산업의 토대가 됐다. 오늘날의 달콤한 초콜릿 바는 원주민 식품이 변하지 않은 채 이어진 결과가 아니다. 새로운 기호와 기술, 식민지 경제가 빚어낸 산물이다. 카카오의 아메리카 역사를 기억하면 상업용 포장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과 관행도 함께 떠올릴 수 있다.

식탁 위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대가

교류는 양방향으로 진행됐다. 밀과 쌀, 사탕수수, 커피, 가축 등 구대륙의 식품도 아메리카의 농업과 식생활을 바꾸었다. 아메리카 작물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퍼진 일을 유럽의 관대함이나 독창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작물을 받아들인 지역의 농민들은 씨앗을 골라 재배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항구와 제국이 식물을 운반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현지 사람들이 결정했다.

이것이 콜럼버스의 항해가 남긴 질문에 대한 더 긴 답이다. 그는 아시아와 향신료를 찾았고, 유럽의 후원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땅과 사람들을 만났다. 세계의 식탁을 바꾸려 출항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변화가 그의 공로만도 아니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아메리카의 작물은 제국과 이주, 강제가 빚어낸 시장과 항로를 따라 이동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작물을 심고 요리하며 새롭게 바꾸었다. 소스 속 토마토와 찌개 속 고추, 한 끼의 감자, 밭의 옥수수는 거대하고 불평등했던 교류와 이를 가능하게 한 농업 지식의 흔적이다.

출처: 스미스소니언, 콜럼버스의 항해와 아시아 항로, FAO, 인간의 식생활과 옥수수, FAO, 뿌리작물과 덩이줄기 작물의 기원과 확산, 고추의 세계적 확산에 관한 연구, 스미스소니언, 초콜릿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