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특허의 이야기는 영화 촬영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자동 피아노 악보처럼 구멍을 뚫은 종이 롤 한 쌍과 바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에서 시작한다. 적이 무선 신호를 방해할 수 있다면 무선 유도 어뢰를 어떻게 조종할 것인가?

1941년 6월 10일, 헤디 키슬러 마키와 조지 앤타일은 ‘비밀 통신 시스템’의 특허를 출원했다. 1942년 등록된 이 문서는 두 사람의 협업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동기화된 롤을 따라 송신기와 수신기가 무선 주파수를 함께 바꾸는 방식을 설명한다. 기발한 발상이었다. 다만 영화배우가 와이파이를 발명했다는 후대의 전설은 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 뜻밖의 협력자들
#3# 라마르는 빈에서 헤트비히 키슬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유럽을 떠난 뒤 할리우드 배우가 됐다. 뉴저지 출신 앤타일은 모더니즘 음악과 실험적 공연에 참여한 작곡가였다. 두 사람은 1940년 무렵 캘리포니아에서 만났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에는 이 시스템의 개발 과정을 기록한 서신과 스케치, 공책이 보존돼 있다.

박물관의 자료 설명에 따르면 이 발명은 전파 방해에 견디도록 주파수를 동기화해 바꾸는 무선 유도 어뢰 구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지식을 협업에 활용했다. 라마르는 오스트리아 무기 제조업자 프리츠 만들과 결혼해 있던 시절 군사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고, 앤타일은 자동 피아노 롤을 비롯한 음악 장치의 작동을 맞춰 본 경험이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자료는 기본 발상을 라마르의 것으로 설명하며, 구현 방법을 발전시키는 데 앤타일이 맡은 역할을 기록한다. 특허에는 두 사람 모두 발명자로 올라 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적인 설명이 발명을 한순간의 영감으로 압축하곤 하기 때문이다. 특허는 두 사람이 함께 발전시킨 구체적인 설계를 보여 준다. 준비와 평가 과정에는 변호사와 관련 기관도 관여했다. 또한 이야기를 수십 년 뒤 등장한 모든 무선 기술이 아니라, 두 사람이 실제로 제안한 장치에 근거하도록 해 준다.

## 시스템의 작동 구상
#6# 무선 유도 어뢰에는 송신기의 명령을 받아 따를 수신 장치가 필요했다. 신호가 한 주파수에 머물면 적이 이를 찾아내거나 방해할 수 있었다. 라마르와 앤타일은 서로 대응하는 기록에 따라 송신기와 수신기가 여러 주파수 사이를 함께 이동하도록 제안했다. 특허는 구멍을 뚫은 롤로 전환 순서를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자동 피아노 롤에는 88개의 열이 있어, 88개 반송 주파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동 피아노와의 연결은 단지 흥미로운 일화가 아니다. 동기화된 롤은 두 장치가 동일하게 변화하는 순서를 따르게 하는 기계적 수단이었다. 이 구상이 작동하려면 양쪽의 박자가 계속 맞아야 했다. 특허의 도면과 청구항은 어뢰를 포함한 이동체의 무선 제어 시스템을 명시한다.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또는 일반 소비자용 통신망을 설명한 문서가 아니다.

제안은 미국 해군에 전달됐지만, 스미스소니언 레멀슨센터에 따르면 해군은 채택하지 않았다. 공개 기록은 이러한 큰 흐름을 뒷받침한다. 설계가 너무 크거나 비실용적이었다는 익숙한 설명은 후대 자료에서 반복되지만, 특허 자체로는 관계자들이 거절한 정확한 이유를 확인할 수 없다. 이 시스템이 전쟁 중 실전에서 어뢰를 유도하지도 않았다.

## 특허와 후대 기술의 관계
#9# ‘라마르가 와이파이를 발명했다’는 말은 기억하기 쉽지만 오해를 부른다. 특허는 무선 명령에 대한 방해를 어렵게 하려는 주파수 전환 방식을 보여 준다. 현대 무선 시스템은 수많은 연구자와 공학적 발전, 표준을 거쳐 발전했다. 일부는 대역확산 기술을 사용하지만, 원리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이 특허가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해설은 라마르를 대역확산 통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미스소니언 자료는 특허와 그 목적이었던 어뢰 적용을 기록하지만, 오늘날의 무선 표준이 여기서 직접 나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국립제2차세계대전박물관 역시 해군이 전쟁 중 이 발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 구분은 라마르와 앤타일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 업적을 더 정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두 사람의 발상을 모든 종류의 주파수 도약 통신 가운데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해서도 안 된다. 특허는 이들이 무엇을 제안했으며 언제 출원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지 무선 공학 전체의 역사가 아니다. 엄밀한 서술이라면 서로 다른 연구가 관여한 기술의 공을 두 사람에게만 돌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

## 전쟁 뒤에 찾아온 인정
#12# 특허는 1942년 8월 11일 등록됐다. 스미스소니언 소장 자료에는 출원을 둘러싼 서신과 스케치, 손으로 쓴 메모가 담긴 공책이 있다. 수십 년 동안 대중에게 라마르는 기술적 제안보다 영화 활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뒤늦은 인정은 특허를 다시 조명했지만, 단순화한 이야기들은 현대 기기와의 연결을 증거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들리게 하곤 했다.

앤타일의 존재도 라마르의 유명세에 가려지기 쉽다. 특허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기계식 음악 장치를 동기화했던 그의 경험은 두 사람이 타이밍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보여 주는 기록상의 단서다. 한편 박물관 자료 설명은 발명의 중심 발상을 라마르의 것으로 평가한다. 이 협업은 화려한 배우가 만든 별난 발명에 그치지도, 작곡가 혼자 이룬 성과이지도 않았다. 특정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동 특허 설계였다.

가장 확실하게 남는 사실은 한 할리우드 스타가 몰래 무선 통신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이 아니다. 라마르와 앤타일이 어려운 전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어뢰의 무선 연결을 방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특허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특허를 통해 그 장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후대의 이야기도 전할 가치가 있다. 다만 기발한 제안과 오늘날 주머니 속 기기에 쓰이는 기술 사이의 거리를 분명히 보여 줄 때에만 그렇다.

출처: 미국 특허 2292387, 스미스소니언 기록, 레멀슨센터, 국립항공우주박물관, 국립제2차세계대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