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0월 31일, 러시모어산의 마지막 천공 작업이 끝났다. 네 대통령의 얼굴은 이미 차례로 공개된 뒤였다. 이를 구상한 조각가 거츤 보글럼은 세상을 떠났고, 아들 링컨이 마무리 작업을 지휘했다. 보글럼의 더 큰 구상 일부는 도면에만 남거나 산속에서 미완으로 멈췄지만 기념물은 완성된 것으로 선언됐다. 85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이라는 말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이야기는 다 끝났고, 누구의 이야기는 거의 시작조차 하지 못했는가?

이 날짜는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에서 14년간 진행된 사업의 끝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기념물을 한꺼번에 공개한 날이 아니다. 국립공원관리청은 실제 조각이 시작된 날을 1927년 10월 4일, 마지막 천공일을 1941년 10월 31일로 기록한다. 그사이 관광 제안은 연방 지원을 받는 국립기념물이 됐다. 동시에 첫 드릴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다른 역사를 품었던 풍경에 미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서사를 새겼다.

## 역사를 담기 위해 선택한 산
#3# 사우스다코타주의 역사학자 도언 로빈슨은 1923년 블랙힐스로 관광객을 불러들일 거대한 명소를 제안했다. 첫 구상은 미국 서부와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그는 조지아주 스톤마운틴의 남부연합 기념 조각에 참여했던 보글럼에게 연락했다. 보글럼은 더 넓은 국가적 주제를 원했고 네 대통령을 골랐다. 앞서 제안된 니들스의 바위 첨탑 지대도 암질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제외하고, 훗날 러시모어산 기념물이 들어선 화강암 산을 선택했다. 장소와 주제는 의도적인 선택이었으며 지형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조지 워싱턴의 얼굴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nps.gov).
조지 워싱턴의 얼굴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nps.gov).

보글럼에게 조지 워싱턴은 공화국의 건국, 토머스 제퍼슨은 확장,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을 통한 연방의 보존,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국가 발전을 상징했다. 국립공원관리청이 설명하는 기념 구상이다. 이들이 바위에 등장하는 이유는 알려 주지만, 그 선택을 미국에 관한 중립적 서술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기념물은 재현하려는 시대만큼이나 그것을 만든 시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다.

허가와 자금 확보에는 여러 해가 걸렸다. 1925년 연방법과 사우스다코타주 법이 작업을 승인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1927년 8월 기념식에 참석해 연방 지원을 지지했다. 대공황기에는 피터 노벡 상원의원이 연방 구호사업을 통한 추가 지원을 추진했다. 사업 관리 주체는 바뀌었고 통제권과 지출을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진척은 보글럼의 설계뿐 아니라 정치인, 예산, 노동자들에게 달려 있었다.

## 화강암을 얼굴로 만든 사람들
#6#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조각 기간 남녀 약 400명이 기념물 작업에 참여했다. 천공 노동자, 대장장이, 권양기 조작원 등으로, 유명 조각가 아래 있던 익명의 작업반에 불과하지 않았다. 일부는 정상까지 700개 계단을 오른 뒤 케이블에 매단 좌석에 앉아 암벽으로 내려갔다. 다이너마이트로 대부분의 돌을 제거하고, 남은 화강암에는 촘촘히 구멍을 뚫어 약하게 만든 다음 깨내고 매끈하게 다듬었다.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조각 기간에 기록된 사망자는 없었다. 이 중요한 사실이 위험 자체를 가려서는 안 된다.

네 인물은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워싱턴의 얼굴은 1930년, 제퍼슨은 1936년, 링컨은 1937년, 루스벨트는 1939년에 공개됐다. 제퍼슨은 처음 배치한 곳의 암질이 부적절해 워싱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야 했다. 이런 변경은 조각이 이상적인 도면뿐 아니라 뜻대로 바꿀 수 없는 산의 물리적 성질에 의해서도 만들어졌음을 보여 준다.

보글럼은 얼굴뿐 아니라 글도 구상했다. 미국사의 주요 사건을 요약하는 거대한 비문을 만들려 했지만 아래에서 읽기가 어려웠고, 제퍼슨을 옮기면서 예정된 공간도 없어졌다. 그는 이어 인물들 뒤에 ‘기록의 전당’을 추진했다. 기념물을 설명하고 국가 문서를 보존할 방이었다. 1938~1939년 노동자들은 폭파 작업으로 산 안에 약 21미터 길이의 터널을 뚫었다. 의회가 자금 용도를 얼굴 조각으로 제한하면서 전당 작업은 멈췄다. 거친 터널만 남았고 웅장한 방은 지어지지 않았다.

## 한계가 결정한 완성
#9# 거츤 보글럼은 1941년 3월 6일 사망했다. 이미 작업 감독 경험이 있던 링컨이 마지막 몇 달을 책임졌다. 국립공원관리청은 조각가의 죽음과 예산 제약에 더해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가능성도 사업을 끝내는 요인이었다고 설명한다. 10월 31일 마지막 천공을 하고 기념물의 완성을 선언했다. 미국은 12월에 참전했다. 따라서 10월의 결정을 이미 참전한 전쟁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훗날 추가된 시설은 설명을 남기려던 보글럼의 뜻을 일부 이뤘다. 1998년 미완성 기록의 전당 입구 바닥에 문서를 담은 작은 보관함을 설치했다. 계획했던 거대한 방이 아니며 방문객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그 존재는 차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기념물의 대외적 모습은 1941년에 정해졌지만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관한 질문은 계속됐다.

## 기념물보다 오래된 이름
#11# ‘완성’에는 또 다른 한계가 있다. 블랙힐스, 곧 파하 사파는 라코타인들에게 신성한 땅이며 다른 원주민 민족들에게도 중요한 곳이다. 국립공원관리청은 조각 대상으로 고른 산이 라코타인들에게 ‘여섯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었고, 선정 과정이 그 문화적 의미를 무시했다고 밝힌다. 1868년 포트래러미 조약은 블랙힐스를 라코타 영토로 인정했다. 1874년 금이 발견되자 탐광자와 정착민들이 조약을 어기고 들어왔다. 나중의 조각이 이 갈등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땅에 대한 한쪽의 서사에 뚜렷한 국가적 형태를 부여했다.

1970년대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 시위대는 기념물에 이의를 제기하며 조약 의무를 지키라고 요구했다. 블랙힐스를 둘러싼 분쟁은 화강암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마지막 천공 85주년을 돌아보려면 성취를 찬양하거나 한 문장으로 비난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수백 명의 노동과 기획자들의 야심도 기록의 일부다. 포기한 전당, 공사를 끝낸 정치적 결정, 대통령들 아래 자리한 땅의 역사도 그렇다. 천공은 1941년에 멈췄다. 산의 의미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출처: 연표, 기념물의 역사, 노동자들, 조각의 역사, 기록의 전당, 비문 구상, 역사와 원주민의 땅, 도언 로빈슨, 링컨 보글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