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이 공격받고 있었지만 바비 피셔는 퀸을 피하지 않았다. 열세 살 소년은 대신 비숍을 움직였다. 상대 도널드 번은 체스판에서 가장 강력한 기물을 잡을 수 있었다. 1956년 10월 17일 뉴욕의 제3회 로젠월드 트로피 대회에서, 유리해 보이던 그 기회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검토되는 대국의 전환점이 됐다. 긴 기보를 외우지 않아도 극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선수는 퀸을 잡았고, 다른 선수는 이후 전개의 주도권을 잡았다.
소년과 상대, 그리고 기물의 배치
번이 백, 피셔가 흑을 잡았다. 대국은 8라운드에서 열렸다. 체스 역사가 에드워드 윈터는 대회 기록과 손으로 쓴 기보를 토대로 날짜가 10월 17일임을 확인했다. 이 자료에 남아 있는 것은 수순이지 선수들이 느꼈을 모든 감정이 아니다. 신동의 이미지와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이야기에서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 체스판은 선택을 보존하지만, 그 뒤의 생각까지 마음대로 지어낼 근거는 되지 않는다.
체스에서 퀸은 룩과 비숍의 움직임을 합쳐 먼 거리까지 갈 수 있다. 충분한 보상 없이 잃으면 보통 큰 불리함을 안게 된다. 하지만 기물의 가치는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다. 어디에 놓였는지, 서로 얼마나 협력하는지, 양쪽 킹이 얼마나 안전한지가 실제 힘을 결정한다. 희생 수는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일부러 기물을 잃는 선택이다. 피셔의 대국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생각을 눈앞에 보여 준다.
잡혀도 되는 퀸
피셔는 자신의 17번째 수에서 비숍을 e6으로 옮겼다. 국제 기보에는 17...Be6으로 적힌다. b6에 있던 피셔의 퀸은 번의 비숍이 잡을 수 있는 상태로 남았다. 번은 18번째 수에서 퀸을 잡았다. 피셔는 c4에 있는 백의 비숍을 잡으며 체크로 응수했다. 체크는 킹이 공격받고 있음을 뜻하며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 다른 계획보다 눈앞의 위험을 먼저 처리하도록 상대를 강제할 수 있다. 퀸을 잡았다고 번이 마음대로 둘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후 기보에는 피셔의 나이트도 가담한 연속 체크가 기록돼 있다. 번의 킹은 여러 차례 움직여야 했고 흑은 다른 기물까지 잡았다. 희생을 설명하는 것은 퀸을 내준 한순간보다 그다음의 연속된 수다. 피셔의 남은 기물은 계속 협력했고, 퀸이 없어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번에게는 자신의 퀸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킹을 지킬 수는 없었다. 대국은 흑의 41번째 수에서 끝났다. 룩이 c2로 이동해 체크메이트가 됐다.
‘세기의 대국’이라는 이름
유명한 별칭은 대국 뒤에 붙었다. 한스 크모흐는 1956년 12월호 Chess Review에서 이 만남을 ‘세기의 대국’으로 소개했다. 세계 체스 명예의 전당은 그 잡지를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품 목록에 퀸 희생 수를 기록했다. 이 표현은 편집자의 평가이지 경기 당일 수여된 우승 타이틀이 아니다. 윈터는 크모흐의 찬사가 아주 어린 재능이 둔 뛰어난 대국이라는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 맥락을 알면 당시의 감탄을 이해하면서도 한 세기의 모든 대국을 객관적으로 비교한 순위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
잡지에는 나중에 자료를 찾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작은 오류도 있었다. 윈터에 따르면 표지에 적힌 페이지 안내가 틀렸다. 번과 피셔의 대국 분석은 실제로 374~375쪽에 실렸다. 체스판과는 멀어 보이는 세부 사항이지만, 한 대국이 어떻게 역사로 남는지 보여 준다. 수순이 기록되고, 해설자가 뜻을 설명하며, 편집자가 기억에 남는 제목을 붙이고, 이후 연구자가 문서를 다시 확인한다. 별칭과 증거는 역할이 다르다.
체스판에 남은 것
70년이 지나도 사람들을 끄는 것은 수순에 나타난 역전이다. 퀸은 사라졌지만, 잃은 쪽이 주도권을 얻어 상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를 계속 만든다. 관중이 놀라는 장면을 지어내거나, 소년이 그날 자신의 미래를 모두 내다봤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기보는 더 정확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해 10월의 어느 날, 열세 살 선수는 기물의 협력과 위험에 놓인 킹이 가장 강한 기물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