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를 떠도는 작은 배
돛 없는 작은 배 한 척이 카리브해를 떠돌았다. 배에는 난파한 스페인 선박의 생존자들이 타고 있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디에고 데 란다에 따르면, 그 배는 다리엔 지역에서 산토도밍고로 가던 중 자메이카 근처 암초에 부딪혔다. 생존자들은 바다에서 며칠을 보낸 끝에 유카탄 해안에 닿았다.
란다는 난파 시점을 1511년으로 기록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의 가세타가 소개한 역사가 카를로스 코노베르 블랑카스의 연구는 1512년 초로 본다. 두 기록 모두 몇 년 뒤에도 반도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을 가리킨다. 스페인 에시하 출신의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와 곤살로 게레로다.
두 사람이 마야의 땅에 도착한 것은 훗날 쿠바에서 원정대가 출항하기 훨씬 전이었다. 난파 후 수십 년이 지나 글을 쓴 란다는 스페인인들이 마야 통치자에게 붙잡혔고 동료 대부분이 죽었다고 기록했다. 그의 연대기는 식민지 시대 수도사의 판단을 담고 있으며, 생존자들이 상륙한 뒤의 일을 다르게 전하는 기록도 있다.
아길라르는 마야 영주의 수하에서 일했다. 코노베르의 연구는 그가 툴룸 지역에서 밭을 일구고 물을 날랐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마야어를 익혔다. 게레로는 체투말 지역으로 갔다. 란다에 따르면 그는 현지 통치자 밑에서 지위를 얻고 마야 여성과 결혼해 아이들을 두었다.
두 사람이 반도에 사는 동안 카리브해에서는 스페인의 지배가 확대되고 있었다. 쿠바의 정착민과 관리들은 섬 밖에서 부와 노동력을 찾았다. 1517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이끄는 배 세 척이 출항했다. 탑승자 가운데는 훗날 항해와 그 뒤의 정복을 기록한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가 있었다.
카토체 곶에 나타난 카누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원정의 목적은 초기 기록에서도 엇갈린다. 란다는 노예로 삼을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는 설과 새로운 땅을 찾으러 갔다는 설을 함께 전했다. 디아스는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배 한 척을 제공하는 대가로 노예 포획을 제안했지만 병사들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원정대는 쿠바에서 바다를 건너 유카탄 북동쪽 해안을 보았다. 배 위의 스페인인들은 내륙에 제법 큰 마을을 발견했다. 쿠바의 마을들에 익숙했던 디아스는 그곳을 ‘대카이로’라고 불렀다. 이어 마야 남성들이 카누를 타고 배에 다가왔고, 현지 지도자 한 사람이 배에 올랐다.
디아스는 음식과 작은 유리구슬을 주고받았다고 회상했다. 방문자들은 더 많은 카누와 함께 돌아와 스페인인들에게 상륙을 권했다. 배에는 현지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양측은 몸짓으로 의사를 전했다.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부하들은 무장한 채 상륙해 그들을 내륙으로 따라갔다.
카토체 곶 근처에서 만남은 전투로 바뀌었다. 디아스는 마야 전사들이 활과 창으로 공격했고 스페인인들은 석궁과 화기, 칼로 맞섰다고 썼다. 그의 서술은 한쪽에 참여한 사람의 기록이다. 마야 지도자가 이 만남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스페인인들은 다시 배에 오르면서 디아스가 신전이라고 묘사한 건물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실었다. 마야 남성 두 명도 포로로 잡았다. 스페인인들은 나중에 이들에게 멜초르와 훌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은 다음 원정에서 해안과 언어에 대한 지식을 이용당하며 통역자로 다시 등장한다.
참포톤의 물과 전투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배들은 반도를 따라 서쪽으로 항해했다. 캄페체에서 디아스는 현지 지도자들이 낯선 이들의 용건을 몸짓으로 물었다고 회상했다. 스페인인들은 식수를 구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무장한 사람들이 모이고 종교 지도자들이 떠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만남은 긴장 속에 끝났다. 배들은 출항했다.
물 부족은 계속됐다. 해안을 더 따라가 참포톤 근처에서 남자들이 다시 상륙해 통에 물을 채웠다. 그러나 물을 배까지 무사히 가져오지 못했다. 마야 군대가 모였고 스페인인들은 육지에서 전투를 벌이게 됐다.
란다는 마야 측 지도자의 이름을 모초우오라고 기록했다. 디아스는 사람들이 상륙 부대를 둘러싸고 화살과 창, 돌로 공격했다고 썼다.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와 많은 부하가 다쳤다. 스페인인들은 보트를 향해 돌파했다. 디아스는 마야의 카누가 뒤쫓는 가운데 사람들이 몰린 보트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집혔다고 회상했다.
스페인 측 사망자 수는 기록마다 다르다. 란다는 20명이 죽었다고 썼고, 디아스는 훨씬 많은 수를 제시했다. 패배 뒤 생존자는 너무 적고 부상도 심해 배 세 척을 모두 운항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가장 작은 배를 버리고, 상륙해 채운 물도 가져가지 못한 채 쿠바로 향했다. 디아스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로 숨졌다고 썼다.
원정대는 석조 건물과 금으로 만든 물건, 쿠바에서 출항한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해안에 관한 소식을 가져왔다. 포로들은 스페인인들의 손에 남았고, 새로 온 이들과 싸울 준비가 된 공동체들의 모습도 기록됐다. 벨라스케스는 또 다른 항해를 준비했다.
해안으로 돌아온 그리할바
1518년 후안 데 그리할바가 배 네 척을 이끌고 출항했다. 디아스가 다시 동행했고 멜초르와 훌리안도 함께했다. 원정대는 코수멜에 도착해 유카탄을 돌아 항해했다. 배들이 참포톤으로 돌아왔을 때 스페인인들은 다시 무장한 저항에 부딪혔고, 그리할바가 다쳤다.
참포톤을 지난 원정대는 오늘날 테르미노스 석호로 알려진 수역을 통과해 타바스코의 한 강 하구에 닿았다. 이 강은 나중에 그리할바의 이름을 따 불렸다. 원정대는 멕시코만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갔다. 다른 강에서는 방어 시설을 세우려고 나무를 베는 소리와 무장한 사람들을 태운 카누가 스페인 배에 다가오는 모습을 디아스가 기록했다.
이번 항해에는 앞선 원정에서 사로잡은 통역자들이 있었다. 디아스는 멜초르와 훌리안이 현지 지도자들과의 의사소통을 도왔다고 썼다. 해안을 따라 선원들은 물품을 금과 면직물, 깃털 공예품으로 교환했다. 후대의 연대기 작가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는 이러한 교역과, 배들이 쿠바로 돌아오기 전 그리할바가 파누코 지역까지 간 일을 기록했다.
오늘날 베라크루스 해안 부근에서 그리할바의 부하들은 멕시카 세계와 연결된 사람들도 만났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의 설명은 토토나카 사람들과의 접촉과 목테수마의 사자가 가져온 선물을 기록한다. 소식은 양쪽으로 퍼졌다. 배를 타고 쿠바로 전해졌고, 낯선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본 원주민들의 관계망을 통해 내륙으로도 퍼졌다.
두 생존자에게 보낸 소식
1519년 코르테스가 쿠바에서 출항했다. 코수멜에서 그는 오래전 난파한 스페인인들이 본토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르테스는 편지와 그들의 석방을 얻기 위한 물품을 들려 전령들을 바다 건너로 보냈다.
디아스에 따르면 소식은 아길라르에게 닿았다. 그는 편지를 자신이 섬기던 마야 영주에게 가져가 떠날 허락을 받았고, 이어 게레로를 찾아갔다. 디아스의 후일담에서 게레로는 가족과 마야 사회에서의 자리가 있다며 거절했다. 이 대화는 게레로가 직접 남긴 글이 아니라 병사의 기록으로 전해진다.
아길라르와 전령들이 해안에 도착했을 때 스페인 배는 이미 떠난 뒤였다. 디아스는 아길라르가 자신이 섬기던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썼다. 나중에 코르테스의 배들이 코수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마야 동행자들과 카누를 타고 섬으로 건너갔다.
유카탄에서 보낸 세월은 그를 바꾸어 놓았다. 디아스는 일부 스페인인이 처음에 아길라르를 마야인으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스페인어와 마야어를 할 수 있었고, 코르테스에게 자신이 떠나온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게레로는 가족 곁에 남았다.
코르테스 원정대는 이어 타바스코로 향했고, 그곳에서 촌탈 마야 군대와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이 패배한 뒤 현지 통치자는 여성들을 스페인인들에게 넘겼다. 그중 한 사람이 스페인인들에게 마리나로 알려진 말린친이었다. 그는 나우아틀어와 한 마야어를, 아길라르는 마야어와 스페인어를 말했다. 코르테스가 마야어 사용 지역의 해안을 넘어 이동하면서 두 사람은 통역의 연결고리가 됐다.
그때까지 이 해안에는 난파 생존자와 교역 원정대, 무장한 상륙 부대가 차례로 나타났다. 멜초르와 훌리안은 끌려갔다가 통역자로 돌아왔고, 아길라르는 오랜 포로 생활 끝에 떠났으며 게레로는 남았다. 코르테스의 선단은 앞선 항해들이 연 길을 따랐고, 그가 만난 사람들도 이전에 왔던 배들에 관해 저마다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출처: 디에고 데 란다: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 회고록, 1권, 멕시코국립자치대학: 그리할바 원정에 관한 디아스의 기록, 가세타 UNAM: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는 누구였나, 시엔시아 UNAM: 말린친과 통역자들



